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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캐나다 모드로 살아가기

(2010.12.01. 에 쓴 글, 건약 회지배포가 되었으므로, 공개^^*)


토론토에 온지 꼭 석달이 되었습니다. 원고 의뢰를 받고, 캐나다 의약품 분류에 대해서 써보다가, 다시 대형 프랜차이즈가 차지해버린 약국 환경에 대해 써보다가, 사실상 그만두었습니다. 표면적인것밖에 알지 못하거니와, 제가 요즘 관심을 갖는 꼭지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블로거가 말하건대집단적이며인공적이고비교우위를 통한 행복이 코리아 모드라면자연과 조화하고혼자만의 정적인 움직임자기만족을 통한 행복이 바로 캐나다 모드라고 합니다제가 생각하는 캐나다 모드도 느리고자족하는 삶입니다. 요즈음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래서 바로 제 자신입니다.

이 곳에서 남편은 공부를 하고 있고, 저는 별다른 것을 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인 직업은 ‘homemaker’이고, 집안 살림을 하고 있으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이없는 유학생 부부의 살림이래 봐야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은 주로 컴퓨터 앞에서 보냅니다. 그 동안 못 봤던 글도 읽고, 음악도 듣고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 두 달간 머물렀던 집은 그러한 캐나다 모드로의 전환을 가능케 해준 곳이었습니다. 시 외곽의 한 콘도였는데, 이제 막 개발되는 곳이어서 그 콘도만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편의시설은 전무했지만, 대신 환상적인 전망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일출, 아마추어팀들의 소프트볼 경기가 열리곤 하는 운동장과 공원, 정돈된 집들 사이 우거진 숲들이 단풍에 물들어 가는 광경들이었습니다. 아무런 커뮤니티에도 속하지 않고, 해가 뜨고 지는 고요한 풍광 속에 살면서 저는 참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하니 참 좋았습니다. 낯선 곳에 온 두려움이나 옹졸한 마음은 금방 해소가 되더군요.

그리고 학교에서 기혼자들을 위해 제공해준 다운타운의 콘도로 옮겨 온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상대적으로 분주합니다. 브랜드 백화점과 은행 건물이 나란히서 있고, 토론토의 가장 중심부에 해당하는Yonge&Bloor 교차로가 집 바로 앞에 내려다 보입니다. (물론 그래 봐야겨우 왕복 4차로가 만날 뿐입니다.) 이 곳 역시 자족하는 삶을 추구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가까운 곳에 원단가게가 있어 천을 사다가 손바느질로 커튼을 만들어달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만들어 놓으니 애착도 가고, 집에오는 손님들에게 이야기거리도 생겼습니다.

캐나다 모드로 살고 있는데, 오히려 이 곳에서 한국 음악은 더 많이 들었고, 페이스북이며 블로그로 더 많은 한국분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라는 그물망의 매듭 부분에 있는 개인들이 점점 또렷이 보이는 중입니다.특히 예술을 하는 이들과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이들, 그리고 글쓰는 이들이 아주 소중해 보입니다. 더불어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도 이래저래 궁리해 보게 됩니다.

캐나다 모드로 살기의 가장 큰 적은 또 자신 안에 있습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하루종일 오만가지 기억과 상상이 다녀갑니다. 내 삶에 책임을 지지 않고 이 곳에 도피해 온 것은 아닌지, 진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성장을 꾀하는 일에 게을러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솟습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온전한 평화를 주지 못하는 저를 다시금 다잡으며, 저만의 속도를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캐나다 모드로 살아보는 경험이, 저의 삼십대를 보다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PS : 한반도의 군사긴장 속에서, 지금도 투쟁 중인 사업장과 재개된 한미 FTA 협상, 4대강 사업으로 분주하신 많은 분들께 이 한가로운 글을 쓰는 손이 송구한 마음도 같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