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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신혼

"결혼 1주기를 즈음하여" written by 남편

나는 남편의 글을 좋아한다. 누구보다도 남편 블로그의 팬이다.
내일로 다가온 결혼 1주년 선물인지, 그와 내가 주인공인, 짧지 않은 글을 하나 공개했다.
가끔은 너무 많은 비화를 공개하고, 너무 많은 각색을 첨가해서 그 글에 등장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ㅍㅋㅋ 
만족스러운 1주년 선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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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주기를 즈음하여" written by 남편

작년 이때쯤, 그러닌깐 결혼식 바로 전날, 서울에서 내려오는 지인들의 숙소를 체크인하고 마지막으로 다음 날 일정을 확인하고는 내일이면 와이프가 될 사람에게 작렬한 바로 그 한 마디,

 

"군대가기 전날 기분이랑 비슷해"

 

상견례도 전에 결혼식장 날짜를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우리의 막무가내의 양가부모 협박식 결혼준비는 석달넘게 이어졌고 그간의 노력과 고충을 아름답게 승화시켜야할 바로 그날, 평생 옥쇄가 될 주워담지도 못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음날 "안녕하세요" "고맘습니다"  혹은 더 고맙고 친근한 사람에게는 "밥은 먹고가라"는 인사를 한 사람에게 또하고 계속하면서 입술은 말라갔다. 입술에 침을 발라가면서 결혼식을 그렇게 마치고 우리의 결혼에서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한 4일 산토리니 휴양 + 3주 강행군 배낭여행식 신혼여행을 떠났다 (사실 집도 없고 혼수라고 해야 월드컵을 대비한 42인치 풀HD TV와 서로의 안녕을 위한 옆사람이 움직여도 잠이 깨지 않는다는 포켓스프링 시몬스 침대가 전부였다). 결혼식은 하나의 이벤트라 심심하게도 결혼 직후 별다른 감정, 가령 폭풍 환희, 눈물어린 감격 같은 것들,은 들지 않았다. 다만 "졸라 목마르다, 배고프다"와 "졸라 피곤하다, 일단 먹고 쫌 자자"라는 본능적인 생각이 밀려왔다. 

 

그러고 분명 산토리니에서는 카렌트해서 영화같이 스키프 휘날리며 해변을 끼고 석양을 등지며 드라이브도 했건만, 정작 이탈리아부터 시작된 강행군은 스위스에서 한 번 토라짐으로 비화되고, 스페인에서는 이제 힘도 없어서 대화가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쯤 되니 우리가 뭔가 하나의 팀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말할 수 있지만 연애시절 차도 있었겠다 밀월여행을 종종 즐겼건만, 3주가 넘는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것과 다른 팀워크를 길러줬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일땐 유럽사람들의 2/3 밖에 되지 않는 다리를 조금 더 빨리 움직여주고, 여유가 필요할 때는 그냥 같이 멍때리면서 사람구경을 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일산에 잠시 살림을 틀고 일사분란하게 집들이를 대충 마치자 토론토로 갈때가 되었다. 토론토에서 3번의 이사를 하고 지금의 집에 자리를 잡았다. 일산에서 우리는 본의아니게 방구 소리를 텄고 모은 돈을 까먹어가면서 소박한 돈지랄을 했다. 토론토에서 우리는 '코알라' '캥거루'같은 은어를 만들어내고 방구냄새와 입냄새를 텄고 치솔을 공유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비둘기, 바퀴벌레와 사투하며 소박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 세수 안하고 하루종일 지내면 세끼 먹는 것은 아무일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고 연애할 때 차려입었던 것들은 백만년만에 한 번씩 외출할때 사용하는 전리품이 되었다. 

 

하지만 서로가 엮이고 낚이면서 돌아가는 생활이 가끔 신비롭다. 나는 페이스북과 구글 리더를 가르쳐주고, 그녀는 캐나다 의료 시스템과 텍스 환불 신청법을 가르쳐준다. 나는 학교 수업 시간에 당한 굴욕을 토로하고 그녀는 길거리와 영어회화 시간에서의 어리버리함을 이야기한다. 저질 자의식과 근거없는 자기비하는 2인용 식탁 앞 떡복이와 맥주 앞에서 요긴한 안주거리가 된다. 가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그녀 앞에서 1시간 강의로 풀어버리고 그녀는 나에게 자꾸 새롭기는 하지만 이상한 음식, 그리고 가끔은 약,을 먹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삐지면 나는 커피를 내려주거나 갑자기 빈혈로 쓰러지는 몸개그를 하고 (내 몸의 멍, 어쩔꺼야...), 내가 삐지면 그녀는 역시나 뭘 먹이거나 맥주를 가져다준다 (그러고는 안주발을 세운다...).

 

결혼준비와 결혼식은 그렇게 결혼과 등가될 수 없는 독특한 놈들이다. 그리고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나 결혼생활. 이건 흡사 연애할때의 밀고당기는 것과도 다르고 각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고귀한 작업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살아갑시다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우리 힘을 합쳐 세상의 부조리를 물리칩시다도 아닌 것 같다. 가끔은 우리가 변신합체로봇같다는 생각이 들기도하지만 우리에겐 광선검도 없고 힘을 쏟게 하는 원자력 에너지도 없다.

 

그래도, 결혼 1주기를 목전에 둔 시점, 또 다른 막말을 내뺃는 다면 아마 이쯤 될 것 같다,

 

"졸라 편하네. 설겆이 해야된는 것 빼고는"

 

오늘은 결혼 1주기를 즈음하여, 설겆이 하기 싫으니 밖에서 그녀랑 저녁 사먹어야 겠다. 

욕빌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