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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신혼

토론토 정착 유학생(남편) 관찰기


온타리오 호숫가, 2010.11.10.


오늘 문득 남편의 질문. "나 여기에 연착륙하고 있는 것 같아?"
계획했던 대로, 원하던 대로, 공부를 기꺼워하고 즐거워하며, 주어지는 과제들을 너무나 잘 해내고 있어서, 의심해보지 않던 것을 그가 물었다. 오홍, 그래서 되물었다. 오빠 생각은? 공부 만족도 10점 만점에 몇 점? 토론토에 대한 만족도 몇 점? 생활 만족도 몇 점? 감정은? 건강은? ....(역시 내 질문은 디테일하다.) 귀찮아서 대답 못하겠다기에 질문 그만두고 곰곰히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번학기의 연구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아마도 나보다 더 많이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테지만,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은 자기가 더 잘 알 테지만, 뭐 나도 한 번 거들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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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요즘 좀 피곤해한다. 이사 후유증도 있고, 짧은 학기에 발표와 페이퍼가 11월에 몰려 있어 물심양면 바쁘다. 처음하는 전업주부 생활에 재미들린 내가 요리도 해 먹이고, 배려하는 게 무안하도록, 안그래도 없는 살이 빠지고 있단다. 

대신 그는 아는 게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내눈엔) 엄청난 양의 글을 읽어 치우고 있다. 프린트 제본, 대여한 책, 구매한책, 한국서 가져온 책으로 책장이 점점 채워지고 있다. 읽은 것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읽고 싶은 것도 늘어나는 것 같다.

인터넷 뉴스로, 트위터/페북으로, 화상채팅과 메일로 다각도로 소통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뉴스도 나보다 더 잘 안다. 다만 이 곳 소식을 잘 모른다. 패밀리하우징에서 특별히 무료로 제공되는 신문 Torontostar와 지하철 무가지 Metro가 캐나다 소식을 접하는 통로인데 시간이 없어 잘 못 보는 것 같다. 이번에 설치한 TV는 익숙치 않아 아직 잘 안 본다. 내게 이 곳 뉴스를 정리해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나도 그건 아직 잘 못한다.

교회도 다니지 않는 우리의 인맥은 오빠의 학교 동료들이 대부분이다. 같은 전공 PHD 입학생5명 중 3명이 한국인이며, 5명 모두가 international인 이 마당에, 대학원이 대체로 그렇듯 학교 커뮤니티는 친목도모를 위한 별다른 활동이 없다. 지금 그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나에게 캐네디언 친구 하나만 있다면.."인데, 워낙 인적 구성이 다양한 이 곳에서 진짜 캐네디언을 만날 기회가 잘 안 보인다. 그의 페북 friend 중 유일한 캐네디언은 동기 누나의 남편 되시는 John 되신다. 

그의 영어는 정확하고 수준이 높지만 자연스러움은 떨어진다. Native가 아니다. 이게 그에게는 컴플렉스가 된다. 그는 Sociolinguistic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locality를 인정하지 않고 native-like speaker가 되려는 욕구와 노력들'을 비판적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 자신도 똑같은 욕구를 느낀다. 그래서 내가 가끔 놀리는데, 그는 쿨하게 인정한다.

토론토는 사회분위기나 복지혜택으로 볼 때, 이방인으로 양껏 위축된 그의 박탈감을 자극할 일이 별로 없다. 있다면 높은 세금 정도? 우리의 정착을 위해 특별히 지원해주는 건 없지만 그리 나쁠 것도 없는 환경이다. 이 곳의 구성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오히려 똘레랑스 절대결핍의 한국사회에서 온 우리에게 이 사회는 참 관대한 곳으로 느껴진다. 

그런 한편 토론토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도 않다. 토론토의 특징은 다양한 문화권이 각자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원조 캐네디언들의 삶과 만날 일도 상대적으로 적은 듯 싶다. 이것이 아무래도 그에게는 아쉬운 일이다. 

토론토 대학은 그래도 괜찮은 조건으로 그를 이 곳에 데려왔고, 학교에서 제공해준 집은 일산에서 살던 신혼집보다 좋으며, 학교가 그에게 요구하는 업무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여러 모로 아쉬움이 있으되 실망감은 없는 듯 하다. 

또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10점 만점에 7점을 주었는데, 크게 아픈 곳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부치는 체력, 좋아하는 과일과 신선한 해물을 맘껏 먹지 못하는 식단,  학생으로서, 이방인으로서, 또 가장으로서 갖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한 한편 전업주부 부인과의 신혼생활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편하다'한다. 가사일을 하지 않으면서 더불어 마초남편놀이를 즐기고 있다. 타고난 감성으로 부인의 감정을 잘 달래주는 것으로 남편 역할을 잘 커버하고 있다. 특히 나는 그의 글을 참 좋아하는데, 바쁜 나머지 블로그의 상콤한 글들은 자주 만날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는 완성된 페이퍼를 읽으라고 주기 시작했다. 배경지식도 없고, 영어도 짧지만 그래도 그 속에 깔끔하고 성실한 그의 스타일과 진심어린 열정이 있어 만족하는 중이다. 

그가 좋아하는 동영상, 가끔 흉내내는 대사. "I want to be a college professor." 거기서 인문학을 하겠다던 여자아이에게 쏟아졌던 질문들, 걱정들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우려를 받아안고 그는 여기에 있다. 토론토 도착 하루만에 "나 집에 가고 싶어.ㅠ" 발언, 요즘도 가끔 듣는, "내가 살림하고 당신이 돈벌었음 좋겠다" 발언들은 그 부담감에서부터 온 것이리라. 이사 후유증보다 영어 컴플렉스로 인한 발표 후유증이 더 크고, 제일 작은 치수 바지의 허리가 점점 남아 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안쓰럽기 그지 없으나, 실망스럽기는 커녕 더 자랑스럽고 멋져 보인다.

석달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벌써 그는 앞으로의 시간 동안 어떻게 지낼지에 대한 감을 잡았다. 늘 그렇듯 그의 감은 무척 직관적이고 신속하다. 영어컴플렉스와 네트워크의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이 될 것이다. 석달 사이 이 정도면 연착륙, 성공한 것 아닌가?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고, 대가의 강의를 들으며 때로 눈물이 핑돌고,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고, 직간접으로 만나는 연구자들과 친밀감/동질감을 느끼고... 나는 그가 무척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