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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셀프 인터뷰. 서른살 토론토에서.

한겨레 esc의 임경선과 김어준의 상담 코너를 좋아해서 그 글들은 다 찾아 읽는 편인데,
오랜만에 홈피에 들렀더니 김어준 씨의 코너가 바뀌었다. 김어준이 만난 여자.
하나 하나 읽다 보니 재미나서 다 읽었다.

김은 대중의 관심과 평가 속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여성 연예인과 정치인들의 자존감, 정치의식, 자아도취의 정도를 그의 시각과 노하우로 재어 보는데, 그 과정이 참 재밌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 "자기객관화".

어릴 적에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누군가 나 자신을 이렇게 인터뷰해주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건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읽고 싶은 욕구였던 거 같다.

울 남편은 캐나다에 오면서 '진심의 탐닉'이라는 김혜리 씨의 인터뷰 모음을 선물로 주며,
나의 인터뷰이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의 그것도 비슷한 것 아닐까.

그를 인터뷰하는 일은 더 깊은 애정과 시간이 쌓인 후에 특별 프로젝트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나 자신을 인터뷰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살의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남편과 함께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지금의 나, 객관화해서 한 번 들여다 보고 싶다.

질문은 간단하다. 네 가지다.
- 요즘 어떤가.
- 거기서 뭐하는가.
- 앞으로 뭐할건가.
- 당신의 20대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 요즘 어떤가.
요즘 몸과 마음이 모두 쉬고 있다. 몸과 마음에 부과되는 의무라는 게 없다.
그냥 해가 뜨는 걸 보고, 먹고 싶은 걸 찾아 먹고, 낮잠 자고 싶을 때 자고, 또 해가 지는 걸 본다.
음악이 필요하면 음악을 듣고, 문자가 보고 싶으면 또 찾아 읽는다.
남편과 손가락 하나만 닿아 있어도 잘 잔다. 더없이 행복하다.
처음 맛보는 외국 생활, 서구의 음식, 다양한 인간들, 말들, 그 속에서 사는 방법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 거기서 뭐하는가.
여기서 나는 풀타임 홈메이커다.
처음 하는 홈메이커 역할, 너무 좋다. 둘이 하는 작은 살림에 요리, 청소, 빨래 다 재밌고 좋다.
남편이 공부하게끔 만들어주는 것도 보람차다. 후후

- 앞으로 뭐할건가.
이 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1년이 됐건 5년이 됐건, 그냥 보내지 말라고들 한다. 대부분은 공부를 하라고 하더라.
혹자는 영어를 익히라 하고, 혹자는 아이를 낳아 기르라고들 하더라.
내 마음은 그 모든 것을 하고 싶기도 하고, 안 하고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최선의 전략은 캐나다 약사 시험이다'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결론에는 변함이 없고, 실제로 이미 시험 준비는 시작했다.
책을 사고, 온라인 강의에 등록을 하고, 1차 시험 접수도 마쳤다.
다만 마음이 여기에 '올인'을 하게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누가 보면 답답하겠지만, 나는 원래 좀 느린 인간이다.
이건 다른 글에서 좀 더 얘기해보자.

- 당신의 20대를 말한다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탐구해온 시간이라고 하고 싶다.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지 고민한 시간이다.
그 고민의 결론을 말하면, 한국사회가 부추기는대로 경쟁하고 승리하고 살아남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 사회에서 내게 부여한 유리한 카드를 거부하고 부정하며 살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 양극의 선택옵션을 가지쳐낸 것이 나의 20대라 하겠다. 이만하면 괜찮다.
이제 좀 더 자신있게 내 인생 끌어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