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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토론토에서 집 구하기

North faced student family housing apartment versus South faced, newly renovated apartment

U of T의 스튜던 패밀리 하우징에서 연락이 왔다. 12월 1일에 원베드룸으로 들어올 수 있단다.

하필, 패밀리 하우징을 단념하기로 하고 학교 근처로 집을 보러 다닌지 3일째,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11월 1일 입주로 계약금을 걸어 놓고 온 그 다음날이었다.

패밀리 하우징은 우리가 결정한 건물과 바로 마주 보고 있는 위치이고,
지금 계약해둔 원룸 형태보다 방 하나가 더 있는 구조에 월 10만원 정도 저렴하지만, 우리는 매우 망설였다.

패밀리하우징에 대한 세간의 평가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대부분 '어둡다', '상상할 수 없을만큼 바퀴벌레가 많다', '신혼부부에게 추천할 곳은 아니다' 등등 우울한 내용들이었다.
더군다나 배정된 방은 북향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패밀리하우징 견학(배정된 방 문 앞에까지 가 보았다)과 오랜 토론 끝에, 원래 계약한 곳으로 가기로 결론을 내리고 모든 서류를 준비했다.

그리고 오늘, 약속된 대로 패밀리 하우징에 방문해 방을 우선 둘러 보고, '먼저 계약해둔 곳이 있다, 쏘리'를 남기고 나온 후, 기존 계약을 마무리 하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갔다.

삼백만마리의 바퀴벌레가 산다는 패밀리 하우징

오늘따라 매니저가 뭐라고 하는지는 정말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지만,
중국인 부부와 아기가 살고 있는 그 집은, 생각보다는, 상상했던 것보다는 정말, 괜찮았다.

일단 우리가 들어 온 바에 따르면 주방엔 바퀴의 흔적이 그득해야 하는데 일단 눈에 띄는 건 없다.
매니저한테 물어봐도 연 두차례 방역을 한다는 것 외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포착되지는 않는다...

물론 화장실은 매우 작고, 시설은 매우 낡았지만, 그건 캐나다의 대부분 집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다운타운에 살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들의 가구는 모두 주워온 것만 같지만 그건 우리 것이 아니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게다가 유난히 따사로운 오늘의 햇볕이 19층 북향의 창문에 제법 빛을 내려쪼이고 있다...

갑자기 한달에 십만원쯤 아끼고 이 곳에 살아도 상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약금 돌려주세요, 플리즈

오피스에서 배출러(원룸) 중 11월 1일에 가능한 것이 있다는 소식까지 듣고는 우리, 계약금을 걸어 둔 아파트로 갔다.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나 패널티를 물게 될 경우를 모두 염두에 두고 갔다.

울 남편, 그 빠른 영어로 구구절절 얘기를 시작했다.
'서류는 다 준비했다... 근데 학교 패밀리 하우징에서 방이 있다고 갑자기 연락왔다... 물론 나는 여기가 새건물이고 더 예쁘고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쩌고...저쩌고...'
말이 길어지자 마음씨 좋은 매니저 아줌마는 '그래서 계약 철회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가 끄덕끄덕 하니 단숨에 손에 있던 계약금과 기존에 냈던 서류를 모두 우리에게 내어준다.
허걱...
'정말 이게 끝이냐' 하니, '그 날짜에 방을 보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으니 괜찮다... 이런 일이 나한테도 교훈을 주는구나.' 한다. 눈물나게 고마운 아줌마다..

한 시간여의 다이나믹, 그 후

다시 패밀리 하우징 오피스에 들러 수요일에 배출러를 보러 오기로 하고, 그 날 계약도 하기로 하고 돌아 나왔다.
나오는 길에 우리가 들어가게 될 방을 멀찍이서 보고 미리 인사를 했다.

은행에 들러 잠시 서류를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꼭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학교로 가는데, 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그 월세 얼마를 아끼기 위해 바퀴벌레와 채광을 포기하고 가장 저렴한 방을 선택하다니, 나의 노력이 정말이지 눈물겹고 처량해서 눈물이 나더라. 남편은 그런 용단을 내려 주어 고맙다고 다독여 주고, 아낀 돈으로 맛난 거 먹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자고 다짐하는데 그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더라. 이거야 원...

돈을 아끼니 서러움이 는다..

토론토에 온 이후 우리의 모든 소비에 대한 결정을 좌우하는 것은 일번이 '가격'이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한국에서는 "가장 저렴한 옵션"은 옵션이 아니었다 한다면,
이 곳에서는 평균 이하의 옵션만이 우리에게 있다. 최저가를 선택할 것인가, 바로 그 위를 택할 것인가이다.
(내가 자주 가는 마트 '메트로'에는 최저가 제품에 'selection'이라는 마크를 붙여둔다. ㅎㅎ)

그러나 그렇게해도 높은 물가와 세금에, 특별한 수입원이 없는 우리 예산은 오버하게 되어 있고,
그래서 고정비를 아낄 수 있는 선택(집, 핸드폰, 교통비, 자가용, 등등)에서 또 한 번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사는 곳의 멋진 전망과 깨끗한 시설을 포기하면 교통비도 아끼고 월세도 아끼고,
아이폰4의 간지와 편리함을 포기하면 통신비가 줄어든다.
대신 서러움과 악이 늘어나는데 이건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