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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약 체험기

캐나다 약사 1차 시험

12, 13일 이틀에 걸쳐 캐약 첫번째 시험을 봤다. 
이 시험을 Evaluation Examination(EE)라고 부른다.
이 시험은 외국 약대를 졸업한 외국 약사에게, 캐나다 약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시험이다.
이미 학부 학점이수내역과 면허증을 서류로 확인받았으므로, 
어떻게 보면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는 약학지식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캐나다 약대 졸업자들과 동일한 시험을 칠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필기(MCQ)와 실기(OSCE)로 나뉘어 있는데, EE와는 내용상의 차이가 있다.
EE가 약물학(Pharmacology)과 약제학(Pharmaceutics), 생화학, 캐나다의 보건의료 개괄 등을 묻는다면, MCQ는 pharmacology를 기본으로 한 Therapeutics로 들어간다. 우리나라 약대에서는 깊이 배우지 않는 내용이다. 
또 그것을 기반으로 OSCE를 치르는데, 16개 스테이션을 돌며 주어진 과제들을 7분 내에 해내야 한다.
환자의 요구와 상황을 고려해 OTC를 권하고 카운셀을 하기도 하고, 
의사나 간호사의 요구에 답하거나, 약국직원을 교육하는 등 그야말로 '실전' 시험이다.
 
시험은 8월에 한국을 떠나면서 기본적인 준비를 했고, 
와서는 이런 저런 핑계로 미적대다가 조금 늦게 발동이 걸리면서 막판에 몰아치기를 했다. 

내가 등록한 학원에서 같은 시험을 준비한 한국 분들은 다들 밴쿠버로 와서 시험을 쳤고, 나는 아는 사람 없이 홀로, 시험장인 집앞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했다. 우리 시험장의 200명이나 되는 응시생 중에 동아시아계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고, 아랍쪽, 인도, 남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방대한 범위의 시험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공부한 Pharmacology나 대학원 전공과 겹치는 면이 많았던 Management는 비교적 수월했지만, Gene tech를 비롯한 생화학과 학부 이후 거의 다룬 적이 없는 약제학이 생각보다 비중이 높아 난해했다.

이틀 연속으로 시험을 치르는 바람에, 첫 날 시험을 치르고는 녹초가 되었다.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춥고 머리가 아팠다. 주로 마법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 저녁으로 소고기 미역국을 끓였다. 남편이 돌아와 시험과 미역국의 상관관계를 일깨우자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지만, 그냥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먹었다. -_-;;;; 

미역국 덕분이었는지 둘째날은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낯선 내용이 많았다. 초반에는 '불합격도 각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주눅들지는 않기로 했다. 그냥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는 것,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타국에서 이런 시험에 응해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오히려 시험 결과가 나온 뒤 (합격해서) 다음 시험 일정이 급해지거나, (불합격해서) 시험에 관심이 떨어지기 전에 이번 시험을 한 번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번 시험의 가장 큰 성과는, 이 공부가 재미있구나,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구나, 싶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합격해서 2차 시험 준비 해보고 싶다. 


사족 - 약사라는 직업

이 직업이 한국에서도 지역에 얽매임이 없이 통용되는 것이 정말 좋았는데, 외국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만약 이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의사소통이 가장 문제가 될텐데, 이 곳은 한국인도 많으니 내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내가 더 관심이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시험에 응하는 그 과정이다.)

이 직업이, 대학교육과 국가고시를 통해 qualification을 받는 것까지는 좋은데, 면허를 받은 이후로 나는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약사'로서 하게 된다. 대학원생이었을 때에도, 연구원이었을 적에도, 가정주부인 지금도 나는 때로 '약사'로 불린다. '전직 약사'가 더 맞는 것 아닌가. 직업이 아니라 마치 신분처럼 작용하게도 되는 것도 같다. 직업은 직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