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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너 자신만의 가치와 의지로 선택한 너의 인생을 누리렴."

뼛속까지자유롭고치맛속까지정치적인프랑스남자와결혼하지않고살아?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목수정 (레디앙,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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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엄마가 되는 과정을 가장 힘있게 각인시켜준 책은,
목수정 씨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란 책이다.
 
제목부터 강렬한 저 책은, 문화예술 분야 일을 하던 저자가 문화정책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떠난 시점으로부터,
결혼이 아닌 '사회연대'로 한 남자를 만나고, 딸을 낳고 키우고, 또 한국으로 돌아와 문화정책 분야에서 일했던 경험들을 담은 책이다. 

학부에서 약학을 배우고 약사로 일하던 중, 서울로 혼자 떠나와 보건정책을 배우고, 의약품 정책 분야 일을 했던 나의 이력과,
유학을 떠나는 남편과 결혼하며 연고없는 캐나다로 떠나온 나의 상황이 묘하게 오버랩되어 내게 더욱 특별했다.

그보다 더 의미있었던 것은 온몸으로 그 삶을 살아내는 목수정 씨의 에너지,
그리고 그 삶이 고스란히 담긴, 살아 움직이는 문장들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모성'이나 '부모되기'를 강조하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모성에 충실하면서도, 모성에 속박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듯이, 자신의 딸도 자유롭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엿본 것이 나도 모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찾아내어 만지작거리고 있는 책이다. 

펼치는 곳마다 명문장이어서 중간중간 읽어도 참 좋다.


"떠나는 당신에게.

지금 누군가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난 경쟁을 딛고 더 높은 곳에 올라서려는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에게 긴 소풍을 베푼다는 마음으로, 여정 자체를 즐기는 먼 길을 떠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투자할 시간, 투자할 돈, 그렇게 해서 딴 학위가 나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더 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매순간 계산해야 한다면, 한 순간도 인생은 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불만을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태교를 위해 가우디를 만나러 바르셀로나로.

나와 희완은 아이가 어떤 사회적 억압이나 고정관념도 물려받지 않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정신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길 바란다.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관습의 폭력과 인간 스스로 자신을 갉아먹도록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재생산되는 자본 중심의 가치관들... 부지불식간에 그 모든 것의 포로가 된 것을 자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 쏟아 부어야 했던 그 엄청난 에너지, 아이가 그 소모적인 시간들에 구속받지 않고 최대한 자유로운 자아를 지닐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가우디의 뛰는 심장이 느껴지는 그 곳에서 뱃속의 칼리에게 말했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현혹되지 말고 자유롭게, 완전히 너 자신만의 가치와 의지로 선택한 너의 인생을 누리렴."
 


"좌파 의사들이 만든 릴라 산부인과 병원.

정기검진이 없을 때도 나와 희완은 여러 강좌를 들으러 수시로 릴라병원에 드나들었다. 고통을 줄이는 요가, 호흡법 강의, 산후우울증 예방을 위한 임신전후의 심리학 강의, 모유 수유법, 심지어는 아빠들만을 위한 심리학 강의까지. 아내와 아이 사이의 밀착된 관계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 있는 그들의 심리적 건강을 위한 예방의학이었다.

모든 강좌가 무료였고 부부가 같이 듣게 되어 있다. 다만 심리학 강의는 남녀를 분리해 진행했다. 육체적인 부분 뿐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까지 사회가 적극적으로 보살피려는 태도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공공서비스 영역이다. 산후에도 산모의 정신건강에 대한 꼼꼼한 의학적 배려가 이어졌다. 출산한 날 아침, 산모들은 각자가 출산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정신분석의 앞에 앉아 토로한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들으면서, 마지막 정신적 노폐물까지 남김없이 몸 밖으로 내보내면서, 마음을 정화시키고 상황을 객관화하는 일이었다. 환한 얼굴의 정신과의사를 만나 2시간 동안 속얘기를 털어놓은 모든 산모들의 표정이 후련하고 산뜻하게 변했음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