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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외가에서 나의 결혼은,

친정 엄마는 장녀다. 무려 2남4녀 중 첫째. 장녀 중의 장녀다.
그 장녀의 장녀가 바로 나다.
 
며칠 전에는 외가친척들 중 유일하게 서울에 사시는 큰외삼촌네 다섯 가족이 모두 부산으로 출동을 하셨다.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사시는 이모들, 작은외삼촌까지 6남매 모두 우리집에 모였다.
모두 모이는 일이 곧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1년동안 미국에 다녀오신 큰외삼촌네 가족, 캐나다에 머무르는 나와 남편, 
년중 상당 부분을 중국에 나가시는 막내 이모부, 최근에 유럽여행을 다녀오신 큰이모까지 모이니
우리 가족이 갑자기 매우 "글로벌화"되었다는 자평을 하며 환영/환송 모임을 가졌다.

인정받는 효자이신데다 탐구적인 성향으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추적하는 큰외삼촌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모든 가족들의 오래된 사진들, 주로 흑백사진들을 수집해 파일로 만드셨다.
사촌동생이 그걸 동영상으로 만들어 사진도 함께 보면서,
대화의 화제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어린시절 추억으로 이어졌다.

30여년 전 엄마가 나를 낳은 기억은 이모들, 외삼촌들에게는 "첫조카"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었던가 보았다.
싱글 직장여성이었던 큰이모부터 중학생이었던 막내외삼촌에게 이르기까지 "조카"라는 존재의 특별함에 대해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드셨다. 

엄마는 나를 낳으며 겪은 산통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00이를 낳고 나니 이제 얘네들(이모들)하고 나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사람이 된 거 같더라고."
ㅋㅋ (많이 아프셨나?)

"그리고 그걸 한 번 더 느꼈는데, 그건 바로 00이를 결혼시킨 일."이라는 것이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끄덕...
내가 결혼한 일 또한 엄마에게 한 차원의 '질적 도약'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내게도 그러했고, 나의 결혼이 엄마와 나의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는 하였다.
그래도 엄마의 평가를 이리 들으니, 놀랍고 고맙다.

결혼하고 나서, 가족모임에서도 매번 남편과 같이 참석하면서,
나도 '어른'이 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
물론 나의 어른들은 '더 어른'이 되셨다.

특히 이모들은 모두 첫째로 딸들을 두고 있기에 나의 결혼을 남일같이 여기지 않으셨다.
결혼을 하고, 조카사위라는 새 식구를 맞아 가족이 되고, 그들이 부모가 되면서 생기는 과정의
당신들의 변화를 너무나 호기심어리고 흥미진진하게 즐기면서 또 관찰하고 계시는 중인 듯 하다.
그 관심과 애정이 내게는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