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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떠나기 전. 요즈음.


1. 지난 주말엔 보건소 간호사이신 엄마를 통해 갓 나온 따끈따끈한 독감백신을 맞았다. 계절성 플루와 신종플루 백신이 혼합되어 있다 한다. 일주일 후에 출국할 예정이라, 세 군데 공항을 거쳐야 하는 게 조금 찜찜해서 엄마에게 부탁해 무지 빨리 공수받았다. 백신을 맞은 아빠, 큰이모, 사촌동생 등의 평을 보건대, 이번 주사는 제법 아픈 편이었다. 나 또한 예상보다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다 팔에서 바늘이 스윽 빠지자 엄마가 약을 급하게 넣었다. 앗, 거으 죽을 뻔 했다.;;; ㅜ 절대 주사맞을 땐 움직이면 안 되는 것이다. 

2. 대학 마지막 학기, 중요한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 남동생이 '대상포진'에 걸렸다. 처음엔 '등이 간지럽다'기에 피부질환 연고를 발라주었는데, 며칠 후 점차 퍼지는 것 같다 싶더니 엄마가 무심코 '대상포진 아니냐'고 하더라. 그제야 생각해 보니 그 부위, 모양, 퍼지는 양상이 완전 똑같았다. 젊은 환자들에겐 통증이 아니라 간지러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단다. 동생의 상황이 안스럽기도 하고, 더 진작 병원에 보내지 못한 약사 누나의 무신경함이 미안하기도 해서 괜히 잘해주고 싶었다. 흑흑;;
최근엔 감기까지 걸려서 임산부 누나의 '기피대상 1호'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먹고 씩씩한 춤삼촌. 아마 보고 싶을 것이다.

3. 병원엔 이번 금요일까지 근무하기로 했다. 내 후임으로 내 오랜 친구 K가 일하게 되었다. 후임이 될 친구에게 며칠간 인수인계할 기회가 주어졌다. 인수인계 없이 직원들에게 케이스별로 하나씩 각개격파하면서 배워온 나는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게 아쉬워서, 몇 장짜리 인수인계 자료도 만들고, 내 나름의 프로그램도 짜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하며 느낀 것들을 동료와 공유하는 것, 내가 아는 이들이 서로 알게 되고 가까워지는 것 다들 재밌다.

4. 박사의 움직임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낮엔 다른 자극들이 많아 잘 모르겠는데, 자리에 똑바로 누워 배를 만지면 자궁의 모양이 만져진다. 거기 가만 손을 올려놓고 박사에게 오늘 하루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보면 배가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육아서적을 읽다가 보니 뱃속의 박사가 '내가 하는 모든 얘기, 내가 듣는 모든 소리를 듣는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데, 박사의 태동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두 번, 친정 식구들과의 식사시간과 남편과의 전화통화시간, 박사가 강하게 반응을 보내왔다. 애가 벌써부터 소통을 할 줄 아는가 싶어 기특하다. 다만 엄마를 닮아 잘 안 움직이는 거 같기는 하다. ;;;

5. 한국에서 행한 출산준비의 중요한 한 부분은 '출산용품의 구매'에 있었다. 임신/출산용품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높은 물가, 정보 부족, 기동성 결핍의 삼종세트 캐나다에서 구하려니 막막한 생각이 들어서 한국에서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깨물어주고 싶게 예쁜 우주복과, 아기를 안고도 외출할 수 있을 가벼운 숄더백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나니 이제 거의 준비를 마쳐간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출산용품을 구하면서 문득 든 생각 하나는, 내가 마치 무서운 소비의 화신 같다는 생각. 단시간에 다양한 물품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 용도와 필요성을 가늠하고 가격과 품질을 비교해 '구매결정'을 하는 나의 모습에, 그 복잡한 행위가 내게 이미 깊숙히 체득되어 있다는 것이 완전히 실감이 났다. 소비를 하면 할수록 또 새로운 아이템이 떠오르고, 그것을 사지 않기로 결정하기까지 마음이 동요하고, 거기에 '금전적 제약'이 맞물릴 때 느껴지는 작은 패배감까지... 그래서 좀 두렵기도 하다. '소비'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알아봐야 한다. 토론토 시즌 II의 미션 중 하나다.

6. 사실 토론토 시즌 II의 더욱 중요한 미션은 영어에 자신감을 갖고 그 곳에 소속감을 갖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물리적 거리를 이유로, 캐나다에 대해서는 언어 장벽을 이유로 두 곳 모두에서 나를 고립시키는 일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일단 영주권 신청을 하기로 했다. 경제적인 동기에서, 또 여러 가지 사회적인 조건에서 필요한 일이 될 것 같다. 우선 기본적인 영어 실력을 검증해야 하니 그렇게 영어와 부딪치기를 시작하고, 그리고 이어 캐약 실기시험도 준비할 거다. 그 다음엔 인턴부터 시작해 일도 해보려고 한다. 남편이 전공실력을 좀 발휘해야 할 때다. 여기서 엄마도 되고, 일도 하면, 반-캐나다 사람 되겠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