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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청설모 친구들, 안녕.

날씨 화창한 공휴일 이스터. 

비록 남편은 몸살기가 있어 골골...하지만 봄나들이를 생략하기에는 엄마와 딸이 너무 쌩쌩하다.


기저귀 안 갈겠다고, 세수 안 하겠다고 울상이 되었던 딸렘은, 

현관 앞 유모차에만 앉히면 고분고분해지므로 ;;;; 유모차에 앉은 채로 머리빗고 옷입고...


일단 계획도 없이 집을 나선다. 

점심 때가 지날 때까지 못 먹은 커피를 한 잔 사 마시고, 

근처 캠퍼스에 요즘 세은이가 사랑하는 '청설모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한다.


최근에는 마트에서 호두를 사서 청설모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데...

그러면 얘네들이 호두를 훽 낚아채서는 귀엽게도 야금야금 탐스럽게 먹는 모습으로 보답하여 제법 보람이 있다.


얘네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호두를 잘 보이게 들고서 혀를 차면서 쮸쮸 소리를 내준다.

너무 가까이 오면 할퀴기 때문에 청설모와 싸인을 주고 받은 뒤 적당한 거리에 던져준다.

그럼 잽싸게 달려와 호두를 낚아채어 간 뒤 오물거리며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호두 껍질이 깨지는 소리가 다 들리고, 순식간에 빈 껍질이 나뒹군다..

이거 왠지 이유식 안 먹는 우리 딸에게 교육적인 효과가 있겠구나, 싶어 넌지시 얘기도 해준다. ㅋㅋ


간혹 그 자리에서 안 먹고 지 보금자리에 쟁여두거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 먹기 시작하는 놈들이 있는데

우리는 '서비스 정신이 없는 놈'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하나 남은 호두를 들고 청설모들을 찾아 헤매고 있을 무렵, 

딸렘은 아빠에게서 호두를 달라고 하더니 바닥에 던진다....

그래 니가 해봐라 싶어 청설모 앞에다 내려줬더니 제법 입에서 쮸쮸 소리를 내면서 아장아장 다가가 바닥에 떨어뜨리기 신공.


헐.... 다 알고 있잖아...

내 딸, 언제 이렇게 큰 거지?


아직 발음이 잘 안 되어 원하는만큼 말로 표현하지는 못할 때가 많지만,

'앗, 얘가 이걸 알고 있구나' 하고 깜놀하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중이다.


목욕하다가 뜨거운 물, 차가운 물이 닿을 때 '아뜨, 아뜨' '아차거' 한다거나...

과일 그림판 앞에서 '바나나 주세요' 하는데, 어부바 하라더니 부엌에 가서 바나나를 찾아 손에 쥔다거나 하면서 말이다.

'청설모 친구들 안녕, 또 만나' 하라는데 손짓을 하면서 '아녀', 뽀뽀까지 해대면... 엄마아빠는 쓰러진다...


이거 원. 고슴도치맘이 안 될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