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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약 체험기

캐나다 약사 2차 실기시험

오래전 얘기가 되었지만, 실기시험을 봤다. 작년 11월.

그리고 운좋게 합격을 했다.


긁적긁적...

내 생각에는 시험이라는 게,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했더라도 운이 따르게 마련인 것 같다.

80% 정도는 나의 노력으로 어찌 되는 것이겠지만 20% 정도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기운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운좋게' 합격이라고 나는 말한다.


에피소드 하나를 말하자면, 

시험 중에 두 스테이션이 연결된 문제가 있었다. 

첫번째 스테이션에서는 환자랑 인터뷰를 해서 적당한 약을 추천해주라, 하는 것이었고,

두번째 스테이션에서는 그 환자 케이스를 리뷰하는 보고서를 쓰라, 하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인터뷰도 하고 답도 찾고 보고서도 작성을 마쳤는데... 두번째 스테이션을 마치고 나서야, 

내가 보고서를 써야하는 노란색 답안지가 아닌, 환자 인터뷰용 메모지였던 녹색 종이에 두번째 답을 썼다는 것을 알았다.

시험관이 '너 노란색 어딨어?' 하는데 나는 노란 종이를 본 적이 없는... 퐝당 시츄에이션...

다시 말하면 한 스테이션에서 0점을 받는 상황이 온 것이었다.

다음 쉬는 스테이션... 계속 되뇌인다... 이건 더미문제일 거야... 점수에 안 들어갈거야... 

아니면 녹색종이에 쓴 걸로 점수를 매겨줄 거야... 나중에 이의제기를 하면 해줄지도 몰라... ;;;;;

흠... 이 문제가 더미였던 것을, 나는 나의 '운'으로 여기는 것이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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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레미가 8개월이었을 때 시험을 봤으니까...

백일이 되기 전에 시작한 공부로 나름대로 정신이 없었던 시절을 보내었다.

저녁 9시까지는 무조건(?) 딸레미를 재우고, 컴퓨터 앞에 붙어서 스카이프로 주저리주저리 연습하기를 매일 세 시간씩..

나중에는 내 옆에서 공부하며, 딸이 깨면 달래는 역할을 맡았던 남편이 내 카운셀을 외워서 재연하곤 했었다.

시험이 다가오자 낮에도 딸레미 안고, 업고, 쌀과자 먹여가며, 점퍼루에 앉혀놓고, 심지어 수유하면서 스터디를 했다. 쿠쿠


사실 그 때는 힘든지 잘 몰랐는데...

아기 낳은 후, 임신 전 체중보다도 4-5kg가 줄어버린 내 몸을 보면 내가 좀 고생을 하긴 했나, 싶기도 하다.

사실 나의 고생은 내 아기의 고생이자 내 남편의 고생이었지만... 

어쨌거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는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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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게 많다. 

약사 실기시험이라니. 이전에는 경험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시험이지 않는가. 

다들 처음 들으면.... 잠시 멈칫한 다음 묻는다... "약을... 짓는 건가?"


후후

한국에서 약사의 역할이라고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마도 조제, 약을 짓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들 그렇게 물어본다.


그러나, 거기에 답을 하자면,

1) 여기서는 약을 짓지 않는다. ---> 한국에서처럼 한 가지 증상/질병에 대해 여러 가지 약을 먹지 않는다. 항생제면 항생제, 혈압약이면 혈압약. 한 가지만 먹기에 약을 지을 필요가 없다. 

(물론 고혈압에 당뇨, 고지혈증 등 여러 질병이 있으면 각각에 대한 약만 합쳐도 여러 가지 약이 된다. 이런 경우, 예외적인 경우로 약을 지/어/준/다. packaging이다. 최근에 생긴 서비스이고, 아직 실기시험에 크게 반영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건 인턴쉽할 때 배우자.)

2) 약을 짓는 테크니션이 따로 있다. ---> 가루로 되어 있는 항생제를 시럽으로 만들어 주는 등의 조작, 처방된 약을 배부되는 통에 세어서 담는 조작. 이런 과정을 담당하는 테크니션이 있다. 

3) 약짓기의 일부 과정은 필기시험에서 평가한다. ---> 연고제 배합하는 과정, 수액제/주사제 희석하고 믹스하는 과정 등등.

4) 그래도 남은 일부 약짓기 과정은 실기시험에 등장한다. ---> 처방전 오류 체크, 환자에게 전달되는 약물 정보와 투약법, 주의사항이 적힌 스티커 확인 등등.


5) 그러나 실기시험의 주된 내용은 카운슬링이다. ---> 처방전을 가져온 환자에게, 혹은 약과 관련한 문의사항을 가져온 환자에게, 일반약을 구매하려는 환자에게 약사로서 제공하는 카운슬링. 그리고 약과 관련한 정확한 지식과 전문적 판단을 요청하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에게 약사로서 제공하는 카운슬링. 그게 바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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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약물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지.

환자와, 그리고 의료인과 정확하고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지,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정보원을 통해 확인하고 거기에 따른 판단을 할 수 있는지,

기본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태도와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걸 보는 것이다.


이 정도를 할 수 있으면 제법 실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 곳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이 시험이 '약사로 입문'할 수 있는 수준을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거다. 이걸 통과하더라도 아직 갈길이 멀다는 걸 누누이 강조한다. 그리고, 나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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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전형료가 제법 비싸다. 응시하는데 200만원 가까운 돈을 냈다.. 

그런데 정말 돈이 많이 드는 시험이더라.

각 스테이션마다 약사 평가자가 한-두명씩 있다. (이들이 하루에 평가하는 사람이 많아야 30-40명.)

그리고 스테이션마다 역할을 맡은 가상의 환자나 의사, 간호사 등이 들어온다.

또한 흐름을 이어가는 진행 역할을 하는 수많은 시험관들이 질서를 유지한다. 다음 장소로 옮겨주고, 수시로 화장실도 데려다주고, 물도 주고 비스킷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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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계는 스튜던쉽, 인턴쉽, 법규 시험을 치른 뒤에 정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터네셔널 졸업생이기 때문에, 토론토 대학의 브릿징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야 스튜던쉽을 시작할 수 있다.

프로그램 이수를 면제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조건이 되는 한에서 위원회에 내 서류를 제출해서 심사를 받아야 한다.

나는 우선 2학기로 이루어진 프로그램 중 첫 학기라도 먼저 들어보려고 한다. 여의치 않으면 면제 심사를 받아 볼 수도 있다.

또 이 모든 것들은  영어성적을 획득한 다음에 할 수 있거늘....ㅎㅎ 

암튼 갈 길이 멀다.